지고지순한 사랑과 문화향기 그윽한 광한루에 흠뻑 취하다
  • 우용원 기자
  • 승인 2014.10.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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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꼭 가볼만한 곳- 남원 광한루원

                                          광한루원 전경
 
 
                                       광한루원 비단잉어
애틋하고 절절한,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의 최고봉이라면 서양에는 로미오와 줄리엣(비극)이 있겠고, 우리나라에는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이야기(해피엔딩)가 있다. 고혹스러운 매력을 가지고 있는 남원의 경관을 배경으로 청춘 남녀의 풋풋하면서도 애잔한 사랑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흐르고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천하절색의 미인이었다고 전해지는 춘향의 자취를 더듬기 위해 호기심 가득한 발길을 광한루로 향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부덕의 상징인 춘향의 숭고하고 고결한 정신을 잇는 취지에서 지난 1931년 전북예술제전위원회 주최로 처음 창설된 춘향제는 전국 최고의 향토문화축제이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우수축제로 잘 알려져 있다. 바로 광한루원이 춘향제가 펼쳐지는 주무대다. 오색단풍이 물드는 올 가을에 꼭 가볼만한 곳으로 성춘향과 이도령의 숨결이 살아있는 광한루원 곳곳을 돌아봤다.

2,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광한루원은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자, 남원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광한루와 연못, 오작교가 어우러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정원으로 광한루원으로 불린다. 광한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이다. 평양 부벽루, 호남에서는 광한루, 영남에서는 밀양의 영남루가 있다.

광한루는 조선 시대에 황희 정승이 양녕대군 폐위를 반대하다 남원으로 유배 왔을 때 광통루를 지은 것이 그 시초라고 전한다. 세종 때 집현전 학자로 잘 알려진 정인지가 전라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이곳에서 본 풍경이 마치 달나라에 있는 광한청허부의 모습 같다 하여 광한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남원부사 장의국이 연못과 오작교를 조성했고, 1582년 전라관찰사로 내려온 송강 정철은 연못에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었다.

광한루원에는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이 있다. 삼신산은 영주(한라산), 봉래(금강산), 방장(지리산)으로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로 보냈다는 전설속의 산이다.
안타깝게도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광한루도 불탔고, 인조(1626년) 때 복원해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광한루원은 명승 제33호, 광한루는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최근 설치된 광한루원 포토존을 지나 첫 번째 만난 영주각은 광한루와 더불어 누원내 신성사상 배경의 정원으로 가꾸기 위해 축조된 상징적인 누각이다. 이 영주각은 관찰사 정철이 주도한 광한루 확장 공사시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몇 걸음 걸으니 방장정이 맞이한다. 연못 한가운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섬이 영주산, 가운데는 봉래산, 오른쪽은 방장산이라고 한단다. 그 안의 팽나무는 450년전 조선 명종때 심어진 것이라 한다. 4개의 홍예로 구성되어 있고 약 50m 길이의 오작교를 지나니 춘향의 영정을 모신 춘향사가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의아한 게 요즘처럼 성형술이 있었던 것도 아닐진데 조선시대 여인들 영정 사진을 보노라면 모두 굉장한 미인이다. 하긴 변사또가 반할 정도이니 대단한 미인이었던 모양이다.

총총걸음으로 도착한 완월정.
완월정은 1971년에 신축된 수중누각으로 1963 채기묵 남원군수의 재임 당시부터 연차계획을 세워 경내를 확장하고 주변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증설된 건물이다. 누각의 이름은 옛날 남원성 남문의 문루인 완월루에서 따온 것이다. 동학농민동기(1894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원성의 문인 완월루가 지금의 제일은행 네거리에 있었다. 또 그 옆의 영주섬에 세워진 정자인 영주각도 눈에 들어온다. 20여미터를 걸으니 거북모양의 돌이 보인다. 연못에 왜 거북모양의 돌을 세워놓았을까? 광한루의 영주, 봉래, 방장 등 삼신산이 조성될 때 만들어졌다고 하며, 머리는 멀리 지리산과 견두산(수지면 고평리 소재)을 향하고 있으며, 이곳에 자라돌의 위치를 정한 까닭과 자라돌을 두게 된 연유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남원지]의 기록에는 석오를 자라로 보느냐 거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른 두 가지의 전설이 전해온다고 되어 있다. 그 하나는 광한루원이 우주를 상징하는 정원으로 꾸민 신선(神仙)사상에 연유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원의 풍수지리와 연관된 것이다. 전자의 연유를 살펴보면 "삼신산(三神山)과 삼선산(三仙山)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태을(太乙)이 내려와 노니는 곳이라 한다. 이 삼신산은 동해에 사는 어마어마하게 큰 자라가 등에 업고 있다는 신선사상의 이상적인 전설에 따라 광한루에 삼신산을 만들었으니 이 삼신산을 업고 있는 것이 자라돌이다. 또 다른 전설은 이 석오를 자라가 아닌 거북으로 보는 것인데. "지리산은 남원에서 바라보면 동남방에 위치한 셈인데 예로부터 지리산에 동남풍만 불어오면 천재지변이 잦았다 한다. 그것은 나쁜 유행병이 퍼져 인명이 상하거나 화재, 홍수 등이다. 오행설에 의하면 이러한 동남풍을 제압하려면 동해에 사는 거북의 힘밖에 없다하여 광한루에 이 거북상을 만들었다. 그 후부터는 동남풍으로 인한 천재지변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어 만난 오작교는 하늘에 사는 옥황상제의 딸 베짜는 직녀와 미천한 소몰이 견우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게으름으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격리되어 1년에 한번 칠월칠석날 다리도 없는 은하수에서 만나도록 하였다. 둘의 만남이 너무 애닳아 이날에는 지상의 까치와 까마귀가 모두 은하수로 올라가 다리를 만들어 둘을 만나게 했는데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를 밟고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비를 만들었다. 칠월칠석날이 되면 비가 오고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까치의 머리가 흰 것은 오작교가 된 까치의 머리를 견우와 직녀가 밟아 벗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같은 하늘나라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신분의 벽을 뛰어 넘은 이도령, 성춘향의 사랑과 흡사하다. 이러한 전설을 지상에 펼쳐놓은 것이 광한루원의 호수와 오작교다. 그래서 오작교는 까마귀 오(烏), 까치 작(鵲), 다리교(橋)자를 쓴다고 한다.
광한루원 전체 전경을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둘러보면서 도착한 월매집.
이몽룡과 성춘향이 백년가약을 맺은 곳이라 한다. 춘향의 어머니가 월매인데 비록 광한루원을 관광지로 조성하면서 지은 집이라지만 중상류층 규모의 가옥이라고 한다. 이는 춘향전에도 묘사되었듯 월매가 비록 퇴기였지만 중상류층의 생활을 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광한루원의 백미는 야간에 보는 것이다.
야간에 보는 누각은 정말 환상이다. 한밤중 달빛 비칠 때 광한루에서 두 남녀가 만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광한루원을 방문한 이날은 내내 춘향이의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아른거렸다.
광한루원과 춘향테마파크에서 매주 열리는 상설 공연과 신관 사또 부임 행차, 국립민속국악원의 무료 공연도 소리의 고장 남원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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