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국회문턱도 못넘은 공공의대법… 남원이 낳은 ‘역대 최악’ 오명
  • 우용원 편집국장
  • 승인 2020.05.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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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활서남대 폐교에서 공공의대법 폐기까지
남원시, 공공의대법 통과 위해 국회 앞에서 굿판까지 벌여
정부만 믿다가 무너진 남원시… 전남ㆍ서울 치밀한 유치 준비
폐교된 서남대 정문

폐교된 서남대학교 의대 정원 49명을 가지고 설립을 추진한 국립공공의료대학 설립법안이 제20대 국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리고 공공의대법 통과를 위해 남원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임순남타임즈에서 짚어봤다. /편집자주

비리 사학인으로 악명을 떨친 이홍하의 1000억 원대 교비 횡령과 사학부실 등으로 2008년 2월 28일 서남대는 폐교됐다. 서남대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서남대는 전국 대학 중 유일무이하게 8년 연속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된 바 있다.


게다가 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은 이홍하의 재단 비리에 대해 지속적인 투쟁에 나섰으며, 이들은 정치권과 정부에 절규의 목소리를 내뿜으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나마 서남대가 내세웠던 의대도 2010년에는 국내 의대 역사상 최초로 자퇴율 10%를 기록하며 전국에 부실대학 오명을 입증했다.

서남대는 2011년 의대 중 유일하게 학자금 대출 제한에 걸리기도 했다.  기초의학 교수가 없어 타 대학 교수가 와서 수업을 진행했고, 실습병원이었던 남광병원은 환자를 만나기 어려웠다.

보다 못한 교육부는 2013년 1월 20일 임상실습 시간 부족 이유로 서남대 졸업생의 의사면허를 취소를 검토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서 같은해 2월 8일 서남대 의대 신입생 모집 금지를 발표했고, 이어 교과부는 5월 9일 서남대 의대에 대해 폐과 처분을 내렸다.

결국 기존 서남대 의대 학생들은 지역 내 다른 의과대학의 병원으로 흩어져 각각 실습교육을 진행했다. 전국 의과대학 중 이렇게 실습교육을 진행한 곳은 서남대가 유일무이했다.

서남대 의대의 몰락을 가장 반기는 것은 의대 유치를 추진하던 전남이었다. 전남 순천대학교와 목포대학교는 서남대 폐교를 의대 유치 기회로 삼고 10여 년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폐교된 서남대학교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후 서남대는 문 닫기 전까지 폐교시키려는 교육부와 법정 공방을 벌였다.

더구나 서남대는 그동안 의학교육평가원의 의대 인증평가를 무시하며 마찰을 빚어왔다. 하지만 2017년부터 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을 받은 의대 졸업자에 한해 의사 국가고시 지원 자격이 부여돼 서남대는 부랴부랴 인증평가를 준비했지만, 오히려 부실을 더 드러내 준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서남대와 남원은 정부와 의료계에 10여 년간 골칫거리와 애물단지라는 인식을 깊게 심어주고 폐교됐다.

서남대 폐교로 슬럼화된 마을.

대학이 문을 닫자 경제공동체였던 광치동의 원룸가와 율치마을도 피해 직격탄을 맞았다.

이 동네는 원래 평범한 농촌이었지만 1991년 서남대 개교 이후 주민들은 집을 개조하거나 원룸과 상가건물 등을 건립해 상권을 형성했다. 이 상권은 20년 넘게 호황을 누렸으며 덩달아 남원 시내도 청년들로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대학이 폐교되자 상권도 무너졌고 사람들이 하나둘 남원을 떠나가며 유령 마을처럼 변했다. 지역을 떠나지 못한 일부 원주민들은 혹독한 계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건물주들은 법원 경매에 건물이 넘어갔다.

또 학생들은 특별 편입학이 100% 보장되지 않은 채 추진됐으며, 400여 명의 교수와 임상 교원, 계약직 직원 등은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쫓겼다. 이들이 떼인 임금만 무려 170억여 원이었다.

이후 전북은 GM 군산공장 폐업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중단 등 지역이 제2의 IMF를 방불케 하는 사태가 이어졌고, 수습 차원에서 정부는 남원에 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하며 지역민들의 마음을 달랬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보건복지부는 2018년 4월 11일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시골 등 도서벽지지역에서 의료인력 부족이 지속해 의료 공백이 발생하고 있어, 지역 주민이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양질의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지역 의료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였다.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살펴보면 전북 남원 지역에 공공의대를 위치하도록 설립하고, 국립중앙의료원 및 전북 지역공공병원 등 전국 협력병원에서 순환 교육을 실시한다.

교육과정에서도 공공의료를 충분히 체험하도록 하고,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견인하는 핵심 인력으로 양성할 계획이며,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정원은 서남의대 정원을 활용해 49명으로 한다.

또 시‧도별 의료취약지 규모나 필요 공공의료인력 수 등을 고려해 시도별로 학생을 일정 비율로 배분해 선발할 예정이다.
하지만 폐교된 서남대를 대체할 공공의대를 남원에 설립하겠다는 공공의대법이 발표되자, 그동안 서남대로 악몽을 겪었던 의료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공의대법이 폐기되기 전까지 의료계에선 크게 반발하며 발목을 잡아왔고, 정부와 남원시는 의료계를 설득할 대안을 만들기보단 이를 무시하고 정치력으로 짓눌러왔다.

결국 공공의대법이 폐기되기 전까지 주민들은 서울로 상경해 국회앞에서 ‘공공의대법’ 통과를 위한 1인 시위를 이어갔고 이에 맞서 의료계에서도 꾸준히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서남대가 폐교되면서 생긴 의대 정원 49명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전국 곳곳에서 포착됐으며, 의료계 눈치를 살피거나 의대 유치가 필요한 지역의 정치권에서는 공공의대법 반대에 힘을 실어줬다.

동네 의원만도 못한 부속병원인 남원서남대학교병원의 진료수익은 전국 사립대 부속병원중 꼴찌를 기록했다.

결국 공공의대법은 국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감염병 의료인력 증진을 위해 시급하다고 무게가 실린 민생법안인 공공의대법이 법안심사소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만장일치제에 있다.

국회법 제95조에는 안건을 심의할 때 그 안건을 심사한 위원장의 심사보고를 듣고 질의․토론을 거쳐 ‘표결’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제109조에서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이른바 ‘관례’라는 이유로 의결하기 전 표결에 붙이지 않고, 그 안건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만장일치제’를 적용하고 있다.

즉 단 1명의 의원이 반대 의사표시가 있으면 해당 안건은 통과될 수 없다. 관례가 아닌 국회법에 대로 직접 표결에 부쳐 의결했다면 공공의대법은 통과됐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임실‧순창)이 극소수 국회의원의 반대로 반복되는 ‘민생법안 발목잡기’를 만든 관례인 ‘만장일치제’를 지적하며 "이러한 ‘관례’에 의한 의결방식이 위법·부당하다는 획일적인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시급을 요하거나 민생과 매우 밀접한 중요법안이 현행 ‘관례’에 따른 의결방식으로 통과되지 못한다면, 직접 표결에 붙여 의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의사진행의 ‘관례’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는 이유로 표결 방식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공공의대법’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요법안들은 앞으로도 일부의 ‘반대’ 때문에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대의기관인 국회의원이, 스스로 국민을 기만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의료계와 정치권에 공공의대법을 반대하자 국회에 상경해 굿판을 벌인 남원시 공공의대범대책위.

공공의대법은 21대 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느낀 지자체와 그동안 의대를 준비해온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어, 공공의대 남원 유치는 더욱 험난한 여정을 겪을 전망이다.

전남은 의대 유치를 위해 30년 동안 준비해왔으며, 이에 맞춰 지난해 전남은 의대 유치를 도정 과제로 선정하고 공공의료지원단을 출범했다.

또 윤소화 의원이 발 벗고 나서 ‘목포대학교 의과대학 설립타당성 조사 연구’ 용역 결과도 나와 당시 이낙연 총리를 비롯한 유은혜 교육부장관, 박능후 복건복지부 장관에게 전달했다.

더구나 전남은 전국에서 의과대학이 없는 유일한 지역으로 의료 특수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복지부가 지정한 응급의료치약 시군 99개 가운데 17곳이 전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공공의대법 통과를 위해 국회앞에서 시위중인 시민들.

서울시도 공공의대 유치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서울시는 공공병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서울시립대에 의과대학을 설립하려고 추진해왔으며, 지난 2017년 4월에 1000억 원을 투자해 서남대 의대를 인수해 서울시립대 산하 의대를 설립하려 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런 서울시가 지난 20일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공공의과대학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정례브리핑을 통해 “서울형 표준방역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겠다”며 “지자체 최초로 설립하는 공공의대는 서울시민은 물론 공공의료시스템의 역량을 강화하는 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들은 의대를 유치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왔지만 남원시는 비대위를 통한 국회앞 1인 시위, 국회 앞에서 굿판을 벌이며 공공의대 통과 촉구 기원제 등에 그쳤다.

A 의과대학 한 교수는 “공공의대가 지역 의료격차 해소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감염증 대비를 위한 의제로 떠올랐다”면서 “이제는 남원에 공공의대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타당성 조사가 아닌 온 국민이 납득할 명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원은 서남대 의대 때문에 의료 인프라를 후퇴시키는 지역으로 오명을 쓰고 있다”면서 “이 오명을 해결하지 않고 정치력으로 밀어붙이다가는 큰 낭패를 볼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용호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제1호 법안으로 공공의대 관련법안을 발의할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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