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경영 바탕, 군민 위한 생활경제 이바지할 터”
  • 우용원 편집국장
  • 승인 2021.03.2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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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거 딛고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현재 ‘군 단위 다이소 경영의 모범’ 사례 극찬
민주평통 중앙상임위원 재임하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전개 등 지역발전 위한 열정 귀감

가난 딛고 자수성가한 이성용 순창 다이소 대표

어릴 적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고 자수성가로 성공신화를 쓴 이가 있다. 고향인 전북 순창군 읍내에서 ‘국민 가게’인 다이소 순창점을 운영하는 ‘기업인’으로 거듭난 이성용(50) 대표가 그 화제의 주인공이다. 이 대표를 만나 그가 겪은 삶의 과정과 기업인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호남권에서 군 단위로는 첫 가맹점 계약을 체결해 눈길을 끌었던 이성용 대표는 전북 순창군 순창읍서 태어나 초중고를 모두 순창에서 자란 뼈 속까지 ‘순창맨’이다.

당시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한다는 사회 환경 속에 딸만 4명을 두었던 아버지 나이 60세에 태어난 늦둥이지만 지독히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집 인근 하천부지에서 호박을 심고 다슬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파는 등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학창시절 공부보다 생계를 이어가는 게 더 급선무라 판단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연식정구를 배워 운동선수로서의 꿈을 키우기도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운동으로 먹기 살기 힘들다”라는 계속된 조언을 받아들이며 결국 운동을 포기하게 된다. 특히 아버지로부터 “고등학교는 어떻게 해서든 졸업해야한다”는 강권을 받아들여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과 부양가족을 책임져야 되는 불가피성으로 군 면제를 받기도 했다.

이 대표는 고교 졸업 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각오로 곧바로 목포로 가서 막노동을 하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서울 봉제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도 했으나 단순노동임을 체험하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판단한 후 다시 광주를 거쳐 목포로 옮겼다.

목포 유달산 자락 밑 달동네 방 한 칸을 얻고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는 도중,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살림을 합쳤다. “어떻게든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갖은 일을 하면서 돈 벌기에 나섰다.

타향에서 몇 년을 열심히 일 한 덕분에 조그마한 돈을 모은 후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살림살이를 옮겼다.

그 당시 사회상황은 컴퓨터가 막 도입이 되는 시기. 피시방을 차리면 안정적으로 돈을 벌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굳히고 친구의 도움을 얻어 고향인 순창에서 피시방을 차렸다. 그는 피시방 내부를 꾸미기 위해 광주 가구점 수십 곳을 돌며 한 푼이라도 싼 값에 책상, 의자 등 집기를 구입했다. 생각 외로 학생 등 손님들 발걸음이 많아 꽤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피시방 옆 한 쪽에 편의점도 오픈하고, 라면 등 각종 생필품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등 하루가 짧을 정도로 오로지 일에만 열중했다.

현재 다이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게 된 사업수단을 배우게 되는 동기가 된 것이다.

20여 년을 피시방 운영을 통해 번 돈으로 부모님이랑 살던 집 옆집을 사고, 군청 소유 부지까지 매입해 현재의 건물을 지었다. 20년 가까이 운영한 피시방을 접고 다이소 본사로부터 가맹점 계약을 체결했다.

그 때 당시는 다이소 본사에서는 직영점만 오픈하고, 가맹점을 별도로 내주지 않는 상황이어서 본사를 수차례 찾아가 설득 끝에 2010년 11월 호남권에서 최초로 군 단위 다이소 가맹점이다.

대한민국 대표 생활용품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다이소는 현재 중국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상품으로 수납정리/주방, 욕실, 청소/가구, 인테리어, 사무, 문구, 디지털/가전, 레저, 식품/유아동, 미용, 패션잡화 등 생필품을 전시판매하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을 정도’의 만물상이다.

현재 다이소 순창지점은 아내와 6명의 직원과 함께 3만 여 개의 각종 생필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순창 군민들을 포함해 인근 오수, 담양 군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정도로 성장해 다이소 본점에서도 군 단위 다이소 경영의 모범이라고 극찬 할 정도다.

경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이 대표는 2012년 순창 청년회의소(JC)회장을 맡으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고향인 순창 발전과 지역민 화합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현재는 순창군 학교운영위 협의회장, 전라북도 학교운영위 부회장 등 사회활동에도 열심이다.

특히 주위 선배들의 권유로 정치에도 관심을 갖고 2017년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 청년위 순창군본부장, 중앙선거 대책위 국민참여본부 민주와동행추진단 전북 부단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민주평통 중앙상임위원으로 일하며 지역발전을 위해서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더욱이 다양한 사회활동 중에도 드러내지 않게 관내 어르신과 아이들을 위해 기부봉사를 ‘조용히 소리 없이’ 실천하고 있는 ‘따뜻한 손’을 지녔다.

‘편 가르지 않고 고향인 순창군 발전을 위해 도움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힌 이 대표는 “앞으로도 고향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살 수 있게 도움 되는 일을 찾아 움직일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는 “고향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쾌적한 환경 속에서 저렴하게 공급해주며 생활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일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순창군민이 잘 살아야 스스로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각오로 ‘자수성가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는 이성용 대표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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