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원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민주주의 성지’ 자부심
  • 임순남타임즈
  • 승인 2021.04.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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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최경식
최경식

오는 4월 19일은 4.19 혁명이 일어난 지 61주년으로, 도화선이 됐던 고 김주열 열사의 사망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돼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다. 고 김주열 열사의 고향이 남원이기에 춘향골은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했다. 특히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의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이에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이승만 정권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섰다. 그 결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공산당으로 몰려 고문을 당했다.

그러던 중 4월 11일 1차 마산시위(3월 15일)에서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체로 발견됐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2차 시위가 다시 일어났다. 고 김주열 열사는 1944년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나 1960년 마산상고 입학을 앞두고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마산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돼 4월 11일 마산시 중앙부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후 4월 18일 고려대학교 3천여 명의 학생들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았고, 일부 학생들은 큰 부상을 입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다음 날인 4월 19일 총궐기해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으나 이승만 정권은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했다. 4월 25일 이승만 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 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 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했다. 여기에 4월 26일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군중들은 정권의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민주주의 성지’인 남원에서는 이러한 4.19 민주혁명 정신을 계승하고 민주화의 초석이 된 열사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자 고 김주열 열사의 추모 제향을 1998년 이후 매년 열고 있다.

다행이 정부에서도 4.19혁명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 2022년을 목표로 4·19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이 고장 출신 고 김주열 열사의 혼이 서려 있는 남원시민들은 ‘민주주의 성지’라는 자긍심을 갖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4·19혁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을 되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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