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글 읽는 소리에 취하고 수려한 산세에 반하고’
  • 우용원 편집국장
  • 승인 2021.06.1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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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유학의 산실 순창 훈몽재
순창 훈몽재 하서 김인후
순창 훈몽재 하서 김인후

조선 유학의 큰별 하서 김인후 선생을 만나다

훈몽재는 전라북도 순창 쌍치면 둔전리에 위치해 있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가 1548년(명종 3)에 순창 점암촌 백방산 자락에 지은 강학당이다.

김인후는 주자의 이기이원론을 계승하는 견해로 성경의 실천을 학문적 목표로 삼아 이를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으로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송강 정철, 월계 조희문 등 당대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하였으며 순창이 호남 유학의 산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훈몽재는 하서 김인후 선생이 39세 되던 1548년(명종 3)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순창 쌍치 점암촌에 초당을 지어 훈몽재라 이름을 지었다.

원래 김인후가 처음 훈몽재를 지은 곳은 대학암 위쪽이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훈몽재는 선생의 5대손인 자연당 김시서(1652~1707)에 의해 1680년경 원래의 터 인근에 ‘자연당’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었다가 퇴락하였다.

이후 후손과 유림들에 의해 점암촌에 복원되었고 더불어 하서 선생과 김시서, 송강 정철, 율곡 이이를 모시는 어암서원이 부근에 건립되었으나 고종 5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쇠락해 가던 훈몽재는 1951년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으나 하서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정신을 되살리고 후세에 전승 발전시키며 나아가 역사적 가치 재조명과 예절, 유학 등 전통문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순창군에서 현재의 위치에 2009년 11월 9일 중건하였다.

훈몽재(강학당), 자연당(숙박 시설), 양정관(교육관 및 숙박 시설), 삼연정(누정), 대학암 등이 있다.

오늘도 선비가 글을 읽는다

훈몽재에서는 학생들의 방학철이면 유학전문교육반(한문학과 대학생 등을 대상)을 들으러 전국 대학생들이 모여든다. 훈몽재에 거주하면서 논어 맹자 등 유학경전을 전문으로 배운다.

특히 방학동안에는 고려대, 단국대, 전주대, 원광대, 안동대, 상지대 등 100여 명의 학생이 유학교육반에 참여하고 있다. 유학교육반 마지막 단계에서는 전국 유학의 대가들을 초청해 김인후 선생의 가르침과 도의, 절의, 문장의 3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강회를 열고 있다. 그렇기에 순창 훈몽재에 가면 아직도 훈장선생님 앞에서 글읽는 학생이나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대학암에 올라 실개천을 바라보며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세상의 시름을 잊게 된다.

송강 정철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학암(大學巖)

대학암은 하서(河書) 김인후(金麟厚)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대학을 논하던 곳이다.

정철은 이곳에서 대학을 통달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바위 정면에 대학암(大學巖)이라는 정철의 친필이 음각(陰刻)되어 있다.

정철은 김인후가 후학들을 지도하기 위해 세운 훈몽재(訓蒙齋)에서 13살 때까지 공부하면서 틈틈이 대학암에 앉아 『대학(大學)』을 읽었다고 한다.

정철은 우리나라 가사(歌詞)문학의 제 1인자로 불리며, 전남 담양에도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김병로 선생 생가터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가인 선생은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북풍회 사건을 비롯하여 각종 노동쟁의와 광복단 김상옥(金相玉) 사건, 6․10만세사건 등을 변론하여 우리 민족의 인권을 지키는 일에 열정을 다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의 감찰위원장을 비롯, 미 군정청의 사법부장을 지내다가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과 함께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대법원장 시절 우리나라 사법질서의 초석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다지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1963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대법원 가인연수관

가인 김병로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사법부 구성원의 교육 및 수양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2010년선생의 생가가 위치한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건립.대지 면적 8만 303㎡에 연면적 5,203㎡로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수관 지하 1층에는 대강의실과 중강의실, 세미나실, 가인 전시실 등이 들어서 있다.

가인 전시실은 상시 개방 및 무료 관람되고 있는데, 3억 원이 투입돼 초대 및 2대 대법원장을 역임하고 후배 법조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순창 출신 가인 김병로 선생을 기념하는 유품과 판결문, 영상물, 사법역사를 담은 각종 자료들과 흉상 등이 전시돼 연수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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